문화를 통해서 명화 보기
1940년 라스코 동굴벽화의 우연한 발견은 미술사에서 하나의 충격이었다. 역사상 그 어떤 그림도 그것만큼 미술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마련하지는 못했다.
100미터 정도 길이의 동굴 벽면에는 선으로 나타내거나 채색하여 표현한 동물 그림이 1,500여 점이 넘게 있는데, 들소와 수사슴과 코뿔소가 그려져 있고 드문드문 사람의 모습도 보인다. 어떤 들소 그림의 크기는 5미터가 넘기도 한다. 그림이 그려진 연대는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기원전 1만 50000-기원전 1만 년 전 사이라 추정하고 있다.
이시기는 후기 구석기 시대 마지막 빙하기로, 기후가 따뜻해지고 있기는 했으나 스웨덴과 노르웨이 등지의 많은 지역이 아직도 얼음에 덮여 있었다. 원시인들은 대체로 동굴에 살고 있었는데, 가축 사육도 하지 않고 농사도 짓지 않아 생계를 사냥에만 의존해야 했다. 그렇게 보자면 원시인들도 요리나 베 짜기 혹은 집을 짓는 것보다 먼저 그리기를 시작했고, 문자와 언어가 형성되기 이전에 이미 현대 미술의 수준을 뛰어넘는 그림을 그렸다고 할 수 있다.
이는
구석기 시대 동굴 거주자들이 사냥꾼인 동시에 뛰어난 예술가였음을 보여주는 것이며, 이 때문에
인류 문명에 대한 논의는 예술에 대한 얘기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 같다.
발굴중인 이스타르문
“들소와 사람은”은 그중에서도 동굴화의 제작 의도와 당대 미술의 특징을 잘 드러내고 있는 그림이다. 거무스름한 붉은색으로 윤곽이 뚜렷하게 잡힌 들소는 공격을 받은듯 두 뿔이 달린 머리를 숙이고 목덜미 갈기를 뻣뻣하게 세우고 있다.
대각선으로 꽂혀 있는 창이 몸통 깊숙이 박혀 있고 찢어진 옆구리로 내장이 쏟아져 나와 있다. 소 앞에는 남근을 드러낸 사람이 팔과 다리를 뻗은 채 쓰러져 있고, 그 밑에는 짧은 창과, 새 모양의 창인지 솟대인지 하는 형상이 단순하고 대담한 선으로 그러져 있다. 들소가 사실적이고 생동감 있게 그려진 반면 사람은 최소의 선으로 형태만 갖추고 있다.
들소와 사람
깊은 동굴 속, 사람이 드나들지 않는 은밀한 곳에 이렇게 사실적인 그림을 그렸다는 것은 그림을 그린 사람에게 주술적 의도가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그림이 실제와 가까울수록 사냥감에 대한 기원이나 사냥 연습에 더욱 효과적이었을 것이다. 라스코 동굴벽화에서는 벽면의 융기된 부분이 동물과 유사할 경우 이를 최대한 이용하여 그림을 그렸다. 이런 점으로 보아 알베르티(Alberti)의 “우연히 일치된 자연과 형태의 이미지에서 그림이 시작되었다”는 주장에도 일리가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그림이 그런 외적 충동보다는 오히려 슬픔이나 고통, 간절함과 같은 내적 이유에서부터 시작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종종 한다.
관광지나 등산로 곳곳에 새겨진 연인들의 수많은 이름 글자들을 문자 이전의 그림이라고 생각하면 어떨까? “동그라미 그리려다 무심코 그린 얼굴”이라는 노랫말이 그림의 시작을 가장 적절히 설명하고 있지 않은가 싶다. 그 점에서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잠재적 화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상처입은 들소
이상으로 문화를 통해서 명화 정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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